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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저들이 어찌 우리가 승리하리라 예상 했겠나. 나 역시 방어선이 뚫리고 수
도가 포위되면 일족들을 내손으로 죽일 생각 이었으니...
그 생각만 하면 재롱둥이 손자한텐 지금도 괜히 미안해지지."

"다들 비장 했지요."

끄덕이며 시인하는 후작이다.

회의장 외곽에 골램 오너들의 대화에 끼이지 못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서있
는 자들이 두무리로 사오십 명은 되어 보였다.

꾀 많은 귀족들이 아밀의 폐망을 예상하고 도피한 것으로 보였다.

키라도 처음 안 사실이다. 아밀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. 조직어디에나 매국
노는 아니더라도 비겁자는 넘쳤다.

이런 자들을 잘 이용하는 알포 국왕인데 돈만 우리고 해외 도피를 용인하다
니 의문이 생겼다.

전쟁이 승전으로 끝이 나고 다시 허겁지겁 아밀로 돌아오려 했지만 국경의
봉쇄가 안 풀려서 이제야 국무회의장에 참석한 것이다.

이미 전쟁의 논공행상은 끝이 났고 그들에게 돌아 갈 것이라고는 몇 십만
골드씩 사놓은 전쟁 채권의 정해진 수익뿐이다.

게다가 늘 자신들에게 돈을 융통하던 군인귀족들이 지금은 대영주들이 되어
금전적으로 의존 하지 않으리라 생각되니 가슴을 치고 후회할 따름이다.

킬라도 전쟁에 참전한 군인귀족으로 궁색해 보이는 그들을 멸시하는 마음이
생겼다.

그 생각도 잠시.

'쾅 쾅' 회의장을 울리는 소리가 두 번 울렸다.

왕실 시종장이 나타나 보석으로 치장된 권위의 지팡이로 회의장 바닥을 두
드리며 국왕의 입장을 예고했다.

장례는 숙연해지고 다들 귀족 정장의 옷매무시를 다듬었다.